서태리 <작품 두 개와 안무가 한 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 비평
조형빈(무용비평)
서태리의 <작품 두 개와 안무가 한 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는 서태리가 2020년부터 시작해 4년 여에 걸쳐 이어온 <하나의 몸으로 2인무 하기> 프로젝트의 과정을 일단락하는 공연이자 리서치 공유회였다. 그동안 있었던 몇 번의 작업들은 각각 <하나의 몸으로 2인무 안무하기>(2020)나,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2022)처럼 2인무라는 주제를 둘러싸고 그것을 생성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거나, 혹은 그것을 어떻게 남길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다양한 층위의 시도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2023년 서울무용센터 1기 입주작가로서 진행했던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의 경우 이전까지 작업해왔던 2인무를 대상으로 놓고 하나의 몸(안무가 자신)으로 그것을 춤으로써, 안무라는 구조 안에서 비어있는 몸들을 어떻게 감각할지 고민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서태리의 꾸준한 탐구는 모두 2인무라는 소재를 중심으로 그것을 어떻게 만들고 구조화하고 펼쳐내고 기록할 수 있을지 찾아가는 것으로, 이는 안무라는 대주제 안에서 안무가가 그것과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을지 다양한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과도 같다.
흥미로운 것은, 서태리의 작업을 구성하는 여러 ‘방법론적 시도’들을 살펴보면 그 모든 작업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질문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카이브란 무엇인가?” 어떤 것을 기록하여 남긴다는 의미를 가지는 아카이브는 예술 작품에 있어서는 작품을 보존하거나 소장하거나 재현하거나 어떤 방식이든 간에 그것을 현재에 붙잡아 두기 위한 방법론을 지칭하는데, 특히나 시간의 예술인 공연예술에 있어서는 그것이 지나가버리고 난 후 남기는 것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시각예술에서 퍼포먼스를 아카이빙하는 문제가 특정 기관에 의한 작품의 소장이나 저자성의 문제와 깊게 연결되어 있는 반면, 공연예술에서 작품을 아카이빙하는 문제는 어떤 방식의 아카이빙이 작품을 완벽하게(혹은 완벽에 가깝게) 그것을 ‘저장’할 수 있는지의 문제와 맞닿아 있다. 모든 종류의 공연예술의 존재 방식이 찰나의 시공간을 점유한 후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떠올려보았을 때,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기록하든 기록물은 결코 원본과 중첩될 수도 없고, 원본을 복제할 수도 없다는 한계를 쉽사리 떠올릴 수 있다. 따라서 공연을 기록한다는 것은 공연의 존재 자체에 반하는 일이며, 오히려 기록으로서의 작업을 이야기하는 것이 작업 자체의 현존성을 무시하거나 그것을 파괴시키는 행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서태리의 작업에서 아카이브는 작업을 구성하는 하나의 방법론이자, 작업이 추구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주요한 열쇠이기도 하다. <작품 두 개와 안무가 한 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 공연에서 안무가는 관객 모두에게 <하나의 몸으로 2인무 기록하기>라고 이름붙여진 책자들을 나누어준다. 이 책자에는 안무가 본인의 간단한 인터뷰와 더불어 그동안 안무가가 작업적으로 고민해왔던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인벤션을 바탕으로 한 15개 안무의 무보가 빼곡히 실려있다. 서태리가 직접 고안한 이 무보에는 무용수가 이동하는 공간과 몸의 방향, 시간에 따른 위치의 이동이 그려지고 있으며, 모든 무보는 (당연하게도) 2인무를 구성하는 두 명의 무용수의 움직임이 독립적으로 기입되어 있다. 하나의 춤을 구성하는 두 개의 몸으로 볼 수도 있을 이 두 무용수의 몸짓(동선)은 유사하면서도 차이를 두고 무보 위에 그려진다. 이런 방식의 무보는 서태리 안무를 직접적으로 기록하는 방식이면서, 동시에 공연이 이루어지는 날 관객이 무보집을 함께 들여다보면서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작업의 일부로서 작동하기도 한다. 무보는 무용수들이 공연을 구현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자, 공연이 이루어지는 무대를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이 춤과 함께 살펴봄으로써 작업을 보다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장치이기도 하다.
더불어 아카이브는 서태리 작업에 있어 작업과 작업을 연결하며 그 다음 작업을 만들어내는 창작의 단초로 작동하기도 한다. 2023년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서태리는 본인의 몸으로 2인무를 추어내는데, 여기에서 한 명의 무용수(서태리 본인)가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해 참조하는 것은 과거에 이루어졌던 2인무이며, 결국 무용수는 이 ‘빈 아카이브’와 상호작용하면서 그것을 둘러싼 새로운 춤을 만들어내게 된다. 서태리에게 있어 안무는 그 원론적인 정의(춤을-쓰다)에 따라 ‘기록해 남기는 것’이며, 이 ‘쓰는’ 행위가 작업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무보집을 건네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는 것과 같이 공연에서 아카이브는 단지 기록된 과거가 아니라 작업을 구성하는 일부이며, 작품이 발화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아카이브가 하나의 기록을 넘어서서 창작과 공연의 일부로 기능하는 것만큼, 서태리의 작업에서 두드러지는 개념은 레퍼런스다.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이 과거의 2인무를 참조하는 것과 같이 서태리의 일련의 작업들은 서로를 참조함으로써 탐구를 이어나간다. 무용수는 2인무를 ‘벗어나기 위해’ 2인무를 빈 무대에 소환하며, 그것은 참조라는 방법론을 통해 이루어진다. <2인무를 벗어나는 하나의 몸>에서 비어있는 2인무는 무대 위 바닥에 붙여진 마스킹 테이프로 암시되는데, 무용수의 몸은 테이프로 그려진 이 선을 따라가거나, 그것을 빗겨 나가면서 움직임을 만들어낸다. 올해의 작업인 <작품 두 개와 안무가 한 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에서는 작품의 제목과 같이 두 개의 작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가 등장한다. 제목에 들어있는 것처럼 안무가가 참조하고 있는 것은 이전에 서태리 본인이 작업했던 두 개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없는 2인의 무용수와 함께 춤을 추었던 한 명의 무용수(도합 세 명의 무용수)이기도 하다.
더불어 <작품 두 개와 안무가 한 명 그리고 세 명의 무용수>에서 서태리는 자신이 참조하고 있는 예술가, 혹은 예술작업으로서 머스 커닝엄과 안느 테레사 드 키어르스마커를 언급한다. 무용수들에게 움직임을 만들어주는 대신 그 움직임들이 무대에 출현하는 시간과 방식을 무용수들 스스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작품에 우연성을 부여했던 머스 커닝엄의 작업 방식, 그리고 서태리의 기존 작업들과 마찬가지로 무용수들을 각각의 성부와 같이 구성하여 무대를 조합했던 안느 테레사 드 키어르스마커의 작업 방식을 본인 작업의 레퍼런스로 삼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안느 테레사 드 키어르스마커는 <바이올린 페이즈>와 같은 작업이 그러한 것처럼 많은 작업들을 음악을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은 안무가이기도 한데, 음악으로부터 추출한 구조를 움직임 동작과 무대의 구성 방식으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서태리의 작업 방식과 연결되기도 한다. 이 두 예술가의 작업은 서태리 본인이 작업 안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안무를 구조적으로 탐구하고자 하는 서태리 작업에 주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